토요세미나

토요 즐거운 책읽기- 조광제 선생님과 함께 3월 8일 오후 4시

작성자
철학아카데미
작성일
2014-03-05 23:20
조회
6087

토요 즐거운 책 읽기

 

 

                 “2014년 3월 8일 오후 4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조광제 선생님과 함께

                                     

                                            샤르트르.jpg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몇십 년 동안 유럽의 지성을 대표하는 실존주의자로 평가받아온 사르트르가 자신의 사상을 간결하게 표현한 책이다.

행동이란 무엇인가를 사르트르의 독특한 관점에서 논하면서 자유와 책임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실존주의 해설서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사르트르는 2차 대전에 참전해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1941년 수용소를 탈출해 파리에 돌아와서 문필 활동을 계속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이와 같은 사르트르의 전쟁 중의 경험을 반영하고 있으며, 사르트르의 ‘사회참여’ 사상을 반영한다. 이 책에서 밝히고 있는 ‘문학자의 사회참여’는, 그 이전의 <구토>나 <존재와 무>에서 볼 수 있었던 니힐리즘 그림자가 짙은 세계관과의 사이에 비약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서, 전쟁 중에 사르트르 자신의 주체적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특히 ‘자유’의 개념은 사르트르 사상의 중심을 차지한다. 그는 존재는 본질에 선행한다고 역설하며,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선택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긍정하는 것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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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사람은 이끼나 부패물이나 꽃양배추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주관적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 나가는 하나의 지향적 존재다. 이 지향 이전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 없고 하나의 뚜렷한 그 무엇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사람은 먼저 되고자 지향한 그것이다. 되고자 원하는 그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보통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의식적 결정이어서 우리들 대다수에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 뒤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정당에 가입하기를 바랄 수 있고, 책을 한 권 쓰고 결혼하기를 바랄 수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이른바 의지라고 불리는 것보다 더 근본적이고 더 자연적인 선택의 표시에 불과하다.

(/ p.19)

 

사람이 스스로를 위해서 선택한다고 말할 때 각자가 스스로를 선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또한 각자가 스스로를 선택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의 행위 중에 우리가 ‘이고자’ 하는 사람을 창조함과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인간의 개념을 창조하지 않는 행위는 하나도 없다. 이것이 될까 저것이 될까를 선택하는 것,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선택하는 것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 p.20)

 

과학이란 추상적인 것들이다. 과학은 동시에 추상적인 요인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지 현실적인 인과성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다. 요인들의 연결이 연구될 수 있는 차원에서 보편적 요인을 다루는 것, 이것이 문제가 된다. 반면에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사람들이 어떤 인과성을 찾아내는 유일한 집단에 대한 연구가 문제가 된다. 그것은 과학적 인과성과는 별개의 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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