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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아카포럼] 박홍규(朴洪奎, 1919-1994)철학의 베르그송_류종렬 선생님
작성자
철학아카데미
작성일
2023-04-20 14:38
조회
8386
강의자료_시론1953박홍규23베르그송PP초_류종렬선생님
참고자료_정담2023MLH철납50박홍들뢰CC
강좌제목: 박홍규(朴洪奎, 1919-1994)철학의 베르그송
담당교수: 류 종 렬
벩송 사상에서 생명, 즉 ‘불’의 내재성을, 또한 들뢰즈의 내재성을 탐구하며 양자를 연결하고자 한다. 번역으로는 『프랑스철학사』(로비네), 『르네의 일기(원제: 어느 정신분열증환자의 일기』(셰세이예), 『스피노자』(모로), 『파스칼』(공역), 『처음읽은 베르그송』(바르텔미-마돌), 『깊이읽는 베르그송』(장켈레비치)이 있다, 논문으로 「베르그송의 자유, 그리고 들뢰즈의 반복」등 여러 편이 있다. [마실에서 천사흘밤(http://cafe.daum.net/milletune) 참조]
강의일시: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철학아카데미 제1강의실 & 철학아카데미 유튜브 라이브 방송 (https://www.youtube.com/channel/UCOUflszJ1vU1VU3ERXG4fTw)
수강료: 무 료
강의소개:
박홍규 선생님이 서양철학을 진단하는 관점은 특이하다. 선생님의 관점은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탐색하는데 있었을 것인데, 철학은 자료들의 총체를 검토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기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없어서 그 주변자료들을 섭렵하기보다, 플라톤이 남긴 자료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연구를 통하여 철학사에 3가지 관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플라톤의 관점으로 페라스와 아페이론을 동시에 놓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인데 정지(공간)에서 시작하고, 또 다른 하나는 벩송의 관점인데 운동(지속)에서 출발한다고 하면서, 서양철학에는 세 가지 방법들밖에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이런 방법은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여 통시태에서도 공시태에서도 통한다.
소크라테스에서 벩송으로 단번에 가로지르는 선생님의 사유에 비추어 보면, 서양 철학사는 통시적으로 보면 고중세의 상층 이데아에서, - 근세의 표면의 이중성(선생님은 여기에 대해 깊이 설명하지 않았지만)을 거쳐서 -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심층의 생성으로 이행하였다. 이런 통시적 발달사는 고대에서는 상식을 통한 수학과 천문학, 근세에서 양식의 추론으로 갈릴레이 물리학과 대수학, 현대에서 고등양식을 통한 생물학과 심리학 등으로 실증과학의 발달과 형이상학이 서로 상보관계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삶의 터전은 통시태보다 공시태에 익숙해져 갔다. 공시적으로 보면, 한편으로 상층인 상징으로부터 표면의 표상(시뮬라크르)이 있고, 다른 한편 심층에서 자연의 자발성으로부터 표면으로 생성(시뮬라크르)이 있어서, 근세이래로 표면의 이중성이 20세기 초에까지도 여전히 난문제로 남아있었다.
체제와 제도에 있어서 정지(동일성)를 실재적인 것으로 보는 쪽은 휴머니스트, 리베랄리스트이면서 탐만치에 빠져있고, 지속(생성)을 실재성으로 보는 쪽은 공산주의적 동지애를 주장하며 휴마니떼르, 리베르떼르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혁명을 찾으려 했다. 하나는 위계적 제도에서 유용성과 실용성을 발휘하며, 다른 하나는 공동체 삶에서 교감과 공감을 토대로 하였다. 이렇게 대비되는 철학은 1900년 파리에서 같은 해에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와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두 계열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편으로 논리적 사고의 통일성과 존재의 본질이 먼저 있다고 믿는 쪽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역동적 사유에서 다양체가 생성하는 여러 모습들을 통해서 현존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자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역사적 굴곡과 터전의 혼돈시기에 박홍규는 오랫동안 플라톤주의자처럼 상층에서 표면을 거쳐 심층으로 가는 쪽이 무, 허무주의, 모자람과 악의 근원을 해결할 것으로 보았을 것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신화와 종교처럼 우화적이거나 맹목적이라고 보면서, 심층에서 현존의 다양한 발생과 생성들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를 철학적 과제로 본 듯하다. 즉 후자의 경우에 사회제도에 비추어서 인민이 삶의 터전을 바꾸고 나아가 새로운 제도를 창안하는 길이 어렵지만, 진정한 난문제의 해결의 길이라고 사유하였을 것이다. 벩송이 실증과학과 철학이 나란히 간다고 하였는데, 인민이 이를 자각하고 실행하기까지 우리의 현실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길을 지금 누군가 실행하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윤구병은 가정과 자식들도 거의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시는 공부에만 열중했던 철학자라고 말하듯이 – 그는 상층의 철학이 아니라 심층의 철학이 그에게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처럼 숙명임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긴 전쟁을 겪었던 소크라테스처럼 전쟁을 두 번이나 직접 겪은 선생님은 삶의 터전과 시대의 운명에서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벩송의 길에서 하나의 해결방식을 찾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가 읽어낸 플라톤은 기존의 플라톤주의가 전혀 아닌, 벩송의 우주 발생론처럼, 우주생성론자 플라톤으로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56NMG)
참고자료_정담2023MLH철납50박홍들뢰CC
강좌제목: 박홍규(朴洪奎, 1919-1994)철학의 베르그송
담당교수: 류 종 렬
벩송 사상에서 생명, 즉 ‘불’의 내재성을, 또한 들뢰즈의 내재성을 탐구하며 양자를 연결하고자 한다. 번역으로는 『프랑스철학사』(로비네), 『르네의 일기(원제: 어느 정신분열증환자의 일기』(셰세이예), 『스피노자』(모로), 『파스칼』(공역), 『처음읽은 베르그송』(바르텔미-마돌), 『깊이읽는 베르그송』(장켈레비치)이 있다, 논문으로 「베르그송의 자유, 그리고 들뢰즈의 반복」등 여러 편이 있다. [마실에서 천사흘밤(http://cafe.daum.net/milletune) 참조]
강의일시: 2023년 4월 29일 토요일 오후 4시
장소: 철학아카데미 제1강의실 & 철학아카데미 유튜브 라이브 방송 (https://www.youtube.com/channel/UCOUflszJ1vU1VU3ERXG4fTw)
수강료: 무 료
강의소개:
박홍규 선생님이 서양철학을 진단하는 관점은 특이하다. 선생님의 관점은 소크라테스의 진면목을 탐색하는데 있었을 것인데, 철학은 자료들의 총체를 검토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가졌기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자료들이 거의 없어서 그 주변자료들을 섭렵하기보다, 플라톤이 남긴 자료들을 깊이 탐구하면서 출발하였다. 그는 플라톤의 연구를 통하여 철학사에 3가지 관점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플라톤의 관점으로 페라스와 아페이론을 동시에 놓고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인데 정지(공간)에서 시작하고, 또 다른 하나는 벩송의 관점인데 운동(지속)에서 출발한다고 하면서, 서양철학에는 세 가지 방법들밖에 없다고 잘라서 말한다. 이런 방법은 서양 철학사를 관통하여 통시태에서도 공시태에서도 통한다.
소크라테스에서 벩송으로 단번에 가로지르는 선생님의 사유에 비추어 보면, 서양 철학사는 통시적으로 보면 고중세의 상층 이데아에서, - 근세의 표면의 이중성(선생님은 여기에 대해 깊이 설명하지 않았지만)을 거쳐서 -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심층의 생성으로 이행하였다. 이런 통시적 발달사는 고대에서는 상식을 통한 수학과 천문학, 근세에서 양식의 추론으로 갈릴레이 물리학과 대수학, 현대에서 고등양식을 통한 생물학과 심리학 등으로 실증과학의 발달과 형이상학이 서로 상보관계로 변화하였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 삶의 터전은 통시태보다 공시태에 익숙해져 갔다. 공시적으로 보면, 한편으로 상층인 상징으로부터 표면의 표상(시뮬라크르)이 있고, 다른 한편 심층에서 자연의 자발성으로부터 표면으로 생성(시뮬라크르)이 있어서, 근세이래로 표면의 이중성이 20세기 초에까지도 여전히 난문제로 남아있었다.
체제와 제도에 있어서 정지(동일성)를 실재적인 것으로 보는 쪽은 휴머니스트, 리베랄리스트이면서 탐만치에 빠져있고, 지속(생성)을 실재성으로 보는 쪽은 공산주의적 동지애를 주장하며 휴마니떼르, 리베르떼르이라고 하면서 새로운 혁명을 찾으려 했다. 하나는 위계적 제도에서 유용성과 실용성을 발휘하며, 다른 하나는 공동체 삶에서 교감과 공감을 토대로 하였다. 이렇게 대비되는 철학은 1900년 파리에서 같은 해에 열린 세계철학자대회와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두 계열로 나뉘어져 있었다. 한편으로 논리적 사고의 통일성과 존재의 본질이 먼저 있다고 믿는 쪽이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 역동적 사유에서 다양체가 생성하는 여러 모습들을 통해서 현존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자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 우리의 역사적 굴곡과 터전의 혼돈시기에 박홍규는 오랫동안 플라톤주의자처럼 상층에서 표면을 거쳐 심층으로 가는 쪽이 무, 허무주의, 모자람과 악의 근원을 해결할 것으로 보았을 것같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신화와 종교처럼 우화적이거나 맹목적이라고 보면서, 심층에서 현존의 다양한 발생과 생성들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가를 철학적 과제로 본 듯하다. 즉 후자의 경우에 사회제도에 비추어서 인민이 삶의 터전을 바꾸고 나아가 새로운 제도를 창안하는 길이 어렵지만, 진정한 난문제의 해결의 길이라고 사유하였을 것이다. 벩송이 실증과학과 철학이 나란히 간다고 하였는데, 인민이 이를 자각하고 실행하기까지 우리의 현실에서 어려운 점이 많다고 보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이 길을 지금 누군가 실행하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누군가가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 윤구병은 가정과 자식들도 거의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선생님은 자신이 좋아하시는 공부에만 열중했던 철학자라고 말하듯이 – 그는 상층의 철학이 아니라 심층의 철학이 그에게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처럼 숙명임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긴 전쟁을 겪었던 소크라테스처럼 전쟁을 두 번이나 직접 겪은 선생님은 삶의 터전과 시대의 운명에서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였으며, 벩송의 길에서 하나의 해결방식을 찾는 것을 사명으로 삼아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가 읽어낸 플라톤은 기존의 플라톤주의가 전혀 아닌, 벩송의 우주 발생론처럼, 우주생성론자 플라톤으로 이해하고자 했을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56N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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