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좌제목 : 자유로운 주체를 향한 철학 - 존재론적 자유와 사회정치적 자유

담당교수 : 조광제

  • 1955년 생. 총신대 신학과 · 서울대학교 철학과 대학원 석박사 졸업. 마르크스 철학사상을 동경하면서도 현상학적 사유를 쉽게 떠나지 못하고 있다. 1979년 10월 부마항쟁 때 진압군인들의 총부리 바로 앞에서 ‘독재 타도!’를 외쳤다. 그 이듬해 1980년 4월 말 총신대에서 페퍼포그 차를 뒤로한 일개 중대 전투경찰이 열 지어 주시하는 상황에서 메가폰을 들고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외치며 시위를 독려했다. 2000년 3월 <철학아카데미>를 공동 설립하여 현재 대표 일을 맡아 하고 있다. 『몸의 세계, 세계의 몸』을 비롯한 여러 권의 저서가 있다. 최근 <네이버>의 ‘열린 연단’에서 ‘실존과 자유, 사르트르의 자유 개념에 관한 일 고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고, 6월 12일부터 공개되고 있다.

강의일시 : 2022년 7월 2일 토요일 오후 4시

수강료

  • 무 료

강의소개

“우리 사회의 도덕 코드는 요구하는 바가 너무 많아 그 누구도 도덕적으로 생각할 수 없고 느낄 수 없고 행동할 수 없게 한다.” 우편 폭탄으로 무작위적인 연쇄 살인을 자행한 일명 유나바머(Unabomber, 1942∼)가 1995년 워싱턴 포스터 신문에 게재한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선언문에서 했던 언명의 한 대목이다. 현대인은 사회가 요구하는 바에 충실하지 않으면, 심하게 표현해 ‘사회의 노예’가 되지 않으면,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흔히 자본을 그 주범이라 여기지만, 실제로는 누가 혹은 무엇이 우리를 자발적인 노예로 만드는 사회의 주인인지 파악하기 쉽지 않다. 과거에는 많은 사람을 자유롭지 못한 노예로 만드는 자가 누구인가가 분명했다. 사회의 주인은 한 사람의 군주였고, 또는 군주를 옹립하는 의회이기까지 했다. 그때 홉스, 로크, 루소는 각자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롭다고 선언했고, 특히 루소는 “인간의 자유롭게 태어난 존재인데, 지금은 어디에서나 사슬에 얽매여 있다.”라고 말했다. 루소가 이 말을 하고 13년 뒤, 미국 독립혁명의 기수였던 패트릭 헨리는 영국 왕과 의회를 향해 “나에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라는 유명한 말을 담은 연설을 했다. 철학은 존재론에 따라 자유를 발견하여 우리의 삶에 적용하고자 한다. 과연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자유로운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칸트는 자율을 추구하는 인간의 선의지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헤겔은 반성에서 시작되는 자기의식에서 자유를 찾아 자유가 생명과 대립하는 것으로 여겼다. 하이데거는 죽음을 느끼고 선취함으로써 죽음이 주는 무(無)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사르트르는 우리의 의식이 저 자신을 대상으로 삼아 부정하는 대자에서 무를 말하고 그 무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자유로움을 중지할 자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필연의 왕국과 자유는 무관하다. 그 필연이 인과적이건 존재론적이건 마찬가지다. “신은 무한히 자유롭다.”라는 말은 “비탈에서 돌은 자유롭게 굴러떨어진다.”라는 말처럼 난센스 하다. 존재론적인 자유가 구체적인 삶의 상황 속에서 실천적인 형태로 변경될 때, 사회정치적인 자유가 문제로 등장한다. 밀의 자유론은 존재론적인 자유론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자유론이다. 에리히 프롬이 말한 “자유로부터의 도피” 역시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의 자유를 겨냥한 것이다. 이사야 벌린이 말하는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 역시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의 자유를 두고 설정한 구분이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비간섭의 자유와 공화주의에서 말하는 비지배의 자유 역시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의 자유다. 자유로운 주체가 존재론적이라면, 자유로움을 원하는 주체는 사회정치적이다. 누구나 자유로운 주체를 원한다. 누구나 사회정치적이기 때문이다. 상황은 자유의 존재론적인 측면과 사회정치적인 측면을 연결하는 매개 고리다. 상황의 구성에서 내가 주체로서 타인들과 맺을 수밖에 없는 관계가 핵심이다. 눈에 보이는 타인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이 결정적이다. 상황 속에서 자유를 두렵게 하는 것은 타인과의 투쟁이지만, 그래서 타인과의 투쟁은 내가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임을 정확하게 일러주지만, 상황 속에서 자유를 희망하게 하는 것은 타인의 자유를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타인의 자유를 통해서만 진정 나의 자유가 성립한다. 나에게 예속되는 타인을 통해 주어지는 나의 자유는 불안의 벽을 수반하는 데 반해, 나로부터 자유로운 타인을 통해 확보하는 나의 자유는 새로운 나의 주체를 향해 열린 문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주체는 죽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주체는 불안한 자신 속에 갇힌 주체이지 새로운 주체를 향해 열린 문을 드나드는 주체는 아니다.